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

소리와 청취의 정치학: 문화와 기술에 대한 비판적 듣기

(Politics of Sound and Culture and Technology)

이 연구의 목적은 소리의 의미와 청취의 방식이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결정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소리를 통해 문화와 기술의 다양한 양상과 변화가 어떻게 들리며, 소리를 통해 내재화되고 내면화된 사회적 취향과 정체성, 권력관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기술의 변화에 따라 소리를 매개하는 매체와 환경, 그리고 예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양상이나 변화, 그리고 갈등 등이 소리를 통해서 드러난다고 하는 생각은 비교적 최근의 생각이다. 전통적으로 소리는 그 자체로 사회-문화적 의미를 담지하는 매개체로 여겨지기보다는 음악이라는 구성물의 물리적 재료로만 여겨 져왔다. 이러한 태도는 소리를 탈가치적, 중립적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존의 소리 연구는 음향학, 음성학 등 소리의 물리적 속성을 살피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확장되어가는 ‘소리연구’(Sound Studies)에서는 소리가 이미 사회-문화적으로 정향되어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즉 소리도 이미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것이고, 그러므로 소리에는 그것을 생산하거나 지각하는 사회-문화가 이미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리가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는 말은 특정한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생산되는 독특한 소리가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리적으로 동일한 속성을 가진 소리가 특정한 맥락에서 들리거나 들리지 않는다는 것, 즉 청취의 경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컨대 ‘소음’은 일반적 방식으로 서술되거나 규정되기(defined)보다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의해 구축된다(constructed). 이 말은 소음이 문맥에 따라 각기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상대적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정한 소리가 어떤 개인이나 사회, 혹은 장소에서 소음으로, 거슬리는 소리로 ‘들려’지는 한편, 다른 맥락, 즉 다른 개인이나 사회, 문화, 장소에서는 전혀 거슬리지 않는 소리로, 즉 ‘들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소리와 청취를 통해서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재서술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소리가, ‘누구’에게, ‘언제’ 들리는지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소리가 어떤 맥락에서 누구에게 의미 있는 소리인지를 추적하고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예컨대 50년 전, 혹은 100년 전에는 들리지 않던 오늘날의 새로운 소리는 무엇인지, 그러한 소리는 누구에게서 생산된 소리인지, 그 소리는 어떤 사회-문화적 의미를 담지 하는지 물을 수 있다. 각기 다른 계층이나 하위문화 그룹이 생산해 내는 소리, 선호하는 소리나 음악이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지, 또는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다이내믹이나 권력 관계를 암시 하는지 물을 수도 있다. 특정 세대나 특정 지역을 드러내는 소리가 있는지, 그 소리에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 차이의 경계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드러나는지 탐구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낸 소리 생산, 소비, 유통, 수용의 변화와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소리와 청각을 통한 세계의 인식이 기존의 인식과는 어떻게 다른지,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그려주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 연구는 그런 의미에서 소리와 청각이 점점 주목받고 있는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필수적이고 시급한 지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