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공개 스터디(세미나) 2주차. 토론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있지만 내 경우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이디에이션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구체화된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조금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어 전통적인 연구 질문(research questions)의 형식을 갖추어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 연구할 것인지(연구할 수 있을 것 같은지) 정리한다. ‘어떻게’는 분석 이론과 도구를 포함한 연구 방법론을, ‘왜’는 연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간략히 서술한다. ‘연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안 될 수도 있다는 뜻.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직관(+아주 약간의 배경지식)에 의존한 아래 질문들은 막상 답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연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빨리 던져 놓고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연구 질문 #1. 지나간 시대, 과거 세대의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음악적(청각적) ‘향수’(nostalgia)의 실체는 무엇인가? 지나간 시대를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그 시대를 향수할 수 있다는 Wilson (2005)의 주장은 타당한가?1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 타당한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사실인 것 같다.) 왜 열광하는가? (가설: 한국 근현대사의 특수성 때문에 향수할 만한 ‘좋았던 시절’이 이제서야 가능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대중문화 ‘현상’ 연구를 하겠다는 것인가? 모르겠다.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아직 모른다. 다만 노스탤지어에 관해서는 기댈 수 있는 연구가 많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동시에 부담이지만 일단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노스탤지어와 정체성의 관계를 연구한 Wilson (2005),2 범지구적 현상으로서의 노스탤지어를 분석한 Boym (2001) 모두 좋은 출발점이다.3 읽다 보면 손에 잡히는 방법이 보이겠지.
‘왜’ 연구하는가?
과거 연예인들(특히 X세대 가수가 주축인 듯?)의 잦은 예능 출연과 90년대 음악에 열광하는 현상은 무엇에 기인한 것이고 어디를 향한 것인지 진단할 수 있다. 방송, 연예계의 이른바 ‘추억팔이’는 어떠한 측면에서 미래 지향적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지금 여기’(the here and now)에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One more thing
이 글을 쓰는 도중 갑자기 생각 났는데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노스탤지아》(Nostalghia, 1983)는 훌륭한 분석 대상이다! 제목 때문이 아니라(나 그렇게 바보 아니다…) 영화 자체가 일단 작곡가에서 출발하지 않나. 심지어 이 작품에 사용된 베토벤 교향곡 9번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토픽. 마침 얼마 전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짤막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것,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다.4 찜! 일단 Pontara (2020) 5장부터 읽자.5
연구 질문 #2. ‘모차르트 키즈,’ ‘베토벤 키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옵션 #1.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팀이 우승하는 걸 보고 자란 ‘베이징 키즈’가 활약 중이다. 1988 서울 올림픽 전후로 태어난 ‘88둥이’나 ‘김연아 키즈’(피겨), ‘박태환 키즈’(수영)도 마찬가지. 18세기 말, 19세기 초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듣고 자란 ‘모차르트 키즈,’ ‘베토벤 키즈’는 다 어디로 갔나? 그 중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곡을 쓰는 게 ‘힙’하지 않다고 생각한 작곡가는 없었나?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1791년에 태어나 베토벤과 공부한 카를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의 사례를 통해 베토벤 이후 세대 음악의 특징을 살펴본다.
옵션 #2. 거꾸로 모차르트과 베토벤은 ‘무슨’ 키즈인가? 베토벤은 잘 모르겠고 모차르트 전기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작곡가는 CPE보다는 JC 바흐(이하 JCB)인 듯한데. 그럼 18세기 대표적인 ‘JCB 키즈’는 또 누가 있고 모차르트와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옵션 #1의 경우 소나타 (형식) 분석을 기본으로 한다. Hepokoski & Darcy (2006)의 소나타 이론이나 Caplin (1998; 2013)의 18세기 음악 형식론을 바탕으로 분석할 수 있다.6 예컨대 체르니의 센텐스(sentences)나 조성 구조는 베토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그 다름을 일반화할 수 있는가? 옵션 #2로 간다면 ‘갈랑 양식’(galant style)이 구현되는 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Gjerdingen (2007)의 스키마 분석을 사용할 수 있다.7 어느 쪽이든 학계에서 논의되는 이론과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체르니의 경우 서신, 비평 등 참고할 수 있는 1차 문헌도 있으니 조금 더 용이할 듯.
‘왜’ 연구하는가?
체르니 피아노 소나타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더 알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건 내 문제이니 패스.8 물론 이 연구를 통해 체르니가 알고 보면 ‘위대한’ 작곡가라거나 심지어 저평가되었다는 촌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얻을 수 있는 학술적인 성과라면 음악사 서술 방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것도 너무 거창하고. 종종 결과론적으로 흘러가기 쉬운 ‘양식 변화’ 중심의 음악사 서술에 최소한의 대안은 제시할 수 있지 않나? (예컨대 모차르트를 비롯한 동 세대 작곡가들은 선대 작곡가의 음악을 듣고 ‘누가 요즘 저렇게 쓰나?’ 따위의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럼 뭐가 ‘구리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안 쓰고 ‘이렇게’ 썼을까?)
연구 질문이 두 개 더 있는데(힌트: 음색, 메타 비평) 일단 여기까지.
계희승
Janelle L. Wilson, Nostalgia: Sanctuary of Meaning (Lewisburg, PA: Bucknell University Press, 2005), 99.↩
Wilson, Nostalgia: Sanctuary of Meaning, 2005.↩
Sventlana Boym, The Future of Nostalgia (New York: Basic, 2001).↩
계희승, “솔라리스에 각인된 바흐의 시간,” 『음악학 허물기』, 2021년 7월 23일.↩
Tobias Pontara, Andrei Tarkovsky’s Sounding Cinema: Music and Meaning from “Solaris” to “The Sacrifice” (New York: Routledge, 2020), 96–117.↩
James Hepokoski and Warren Darcy, Elements of Sonata Theory: Norms, Types, and Deformations in the Late-Eighteenth-Century Sonat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William E. Caplin, Classical Form: A Theory of Formal Functions for the Instrumental Music of Haydn, Mozart, and Beethove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Analyzing Classical Form: An Approach for the Classroo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Robert O. Gjerdingen, Music in the Galant Sty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강용식 선생님과 공동 연구도 가능하다.↩
체르니 피아노 소나타 전곡 들어 봤나? “If not, you don’t know what you are missing.”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